20세기 동아시아 심성체제의 탐색적 연구―한국과 일본의 제국/식민 그리고 식민 이후 체제에서의 심성을 중심으로(2019년 9월~2025년 8월)
“각각의 시대는 심성적으로 자신의 우주를 만든다”는 뤼시앵 페브르의 언명이 본 연구가 지닌 이론적 의의를 대변한다. 우리는 심성의 구조를 이해함으로써 시대를, 따라서 또한 특정 사회의 당대적 짜임새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본 연구는 20세기 한‧일 심성에 대한 탐색적 연구 과정 속에서 심성 분석을 위한 방법론적 도구와 이론적 틀을 개발하고, 다시 이를 연구에 투입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동아시아 심성체제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연구는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첫째, 19세기 말 제국주의의 확산과 함께 뒤엉키기 시작한 동아시아 국가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을 서로의 문화에 대한 증진된 이해에 입각해 도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각각 해방과 패전을 맞은 한‧일 양국은 서로를 곁눈질하면서 묵인과 회피, 포섭과 배제를 되풀이해 왔다. 서로를 향하는 엇갈린 시선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심성에 대한 고찰 없이 양국이 상호이해를 제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지점에 본 연구의 실천적 필요성이 존재한다. 양국 국민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만 국가 간의 정치적 관계가 악화되더라도 국민들 간의 교류가 지속되는 성숙한 관계의 수립 가능하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둘째, 식민 이후(post-colonial) 사회에 대한 새로운 고찰과 ‘지적 탈식민화’의 긴박한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포스트식민주의를 비롯한 급진 이론들이 득세하면서 유통된 담론들은 마치 ‘탈식민화’가 이미 달성된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키지만, 실제로는 지적 (재)식민화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형식적으로 종식된 것으로 간주되는 제국주의 지배체제가 현재까지도 세계질서를 결정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탈식민의 관점에서 식민 이후의 사회를 고찰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셋째, 20세기 제국/식민체제를 심성의 생성-침투-용해-발현과정으로 탐구하는 시각의 전환을 통해 20세기의 시대적 특징을 밝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제국/식민체제에서 제국의 지배는 물리적‧폭력적 지배뿐 아니라 식민지 민중의 의식과 사유, 인성과 가치관, 세계관 등 집합의식 및 무의식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통해 완성된다. 따라서 법률과 제도에 대한 통제를 바탕으로 윤리적 규범과 세계관,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상까지 전유하게 된 제국의 지배를 제국/식민지의 ‘심성 세계’로부터 확인하고 설명하는 것은 유의미한 접근이 될 수 있다.